“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참아주고 사랑으로 품어줄 때 하늘나라 왕 같은 제사장의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큰 그릇인가 달아보시느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자꾸 신경 쓰이게 하는 식구 옆에 같이 두실 수도 있습니다. 잘해주는 식구만 내 옆에 있으면 내가 큰 그릇 될 기회가 없지 않습니까.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참아주고 사랑으로 품어줄 때 하늘나라 왕 같은 제사장의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지체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 삼은 한 몸 안에서 코의 역할, 귀의 역할, 눈썹의 역할, 손의 역할, 발의 역할을 하는 식구들이 있지만 다 귀한 지체입니다(고전 12장 12~27절). 누구를 업신여길 것도 없고, 내가 잘났다 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바닥도 귀하게 여기셔서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했습니다(롬 10장 13~15절).
“하나님과 한 몸 된 우리는 마음을 같이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일뿐 아니라 성도들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높이 되기를 좋아합니다. 서로 상처받고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이 높여주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겸손치 못한 데서 모든 싸움과 악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만 생각하고 자기만 옳다고 여깁니다.
그런 모습에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의로우신 당신의 피와 살을 우리에게 먹여주심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요 3장 3절). 하나님과 한 몸 된 우리는 마음을 같이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일뿐 아니라 성도들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빌 2장 2~9절).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불쌍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식구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불쌍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죄를 지어 지옥에 갈 영혼들이 불쌍해서, 죽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육체의 가시 옷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의 사망 죄를 대신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식구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불쌍하지 않으면 식구들이 사랑스럽지 않고, 사랑이 없으면 전도하기도 힘듭니다. 불쌍하면 죽어가는 영혼을 돌아보고, 가서 챙겨주고 보살펴주게 됩니다. 불쌍하지 않으면 상처를 입거나 말거나 함부로 말하지만 불쌍하면 상대가 아플까 봐 상처 주는 말은 안 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영생 축복을 받게 하여 천국에 데려가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오래 참고, 무례히 행치 않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요 13장 34절). 아버지께서 베푸신 사랑은 자기를 희생하셔서 우리를 살리신 사랑입니다. 아버지처럼 식구들을 아끼고 내 몸같이 사랑해야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도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시고 자비와 인애를 원하십니다(호 6장 6절). 하나님을 알면 사랑이신 하나님께 배우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는데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영생 축복을 받게 하여 천국에 데려가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오래 참고, 무례히 행치 않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고전 13장 7절).